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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수능, 재수, 그리고 인생 (2편)

by Mr.dodo 2023. 11. 17.

"내가 학원강사 30년 하면서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재수 학원 첫 수업이 끝나고

곱셈 공식이 뭐냐고 질문했을 때

수학선생님이 보였던 반응이다.

 

그리고 그 해 12월,

수학 1등급을 가지고 다시 찾아뵀을 때,

그는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 이만큼 몰랐는데~ 1년 만에 이만큼 올랐다~"

 

를 자랑할 생각은 별로 없다. 이미 5년 정도 실컷 했다.

 

대신 이 시리즈의 핵심은 '태도'이다.

조금이라도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내려 놓고 물어볼 수 있는 태도

 

 

오늘 수능을 치고

[1년 더] 버튼을 누른 당신이라면 분명히

곱셈 공식 좀 모를 수도 있지 뭐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잖아

 

라는 마인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너무 익숙한 말이 되어버린

"메타인지"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인데,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만 알면

나한테 필요한 노력의 크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무엇을 아는가를 측정해보니 없었다.

 

그러니 체온계에 40이 찍히든,

존심 상한 삼수생한테 뚜들겨 맞아 눈탱이가 되든

어제랑 똑같이 공부를 하는 수 밖에

 

 

돌이켜보면 지독한 곳이었다.

 

내가 갔던 재수학원은 남자 전용 기숙학원이었다.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관심이 빼앗길까 무서워서 한 선택이었다.

 

그곳은 군대식 스파르타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일단 들어가면 나갈 수 없다.

 

외부와의 연락은 오직 사감들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수위 아저씨는 장판교에 장비도 한 수 접을 위용을 떨치며, 몽둥이를 들고 철문 앞을 지켰다.

 

 

학생들은 처음 들어갈 때 쳤던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세워

반, 독서실 자리, 숙소 등 서열이 나뉘었다.

나는 당연히 제일 뒤에 있었다.

 

소위 사감 선생님들은

성적이 이미 좋은 애들에게만 잘해주도록 프로그램 되어있었다.

 

나를 포함한 같은 반 애들은

내돈내산으로 꼴통취급을 당한 셈이다.

 

 

죽도록 하라더니, 왜 또 적당히 하래

 

입소 한 달이 지나고
그 지독한 사람들은 나에게 제발 좀 적당히 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도 악마 사관학교 출신 이런게 아니라

단지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이놈 아저씨 역할을 맡았을 뿐,

 

독감에 걸려 골골대는 애가 자꾸 좀비처럼 내려와서

단어시험을 치겠다고 하니 부캐 접속이 끊겼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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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독서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천장에 뭘 붙이고 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원래 방패에 그려진 호랑이가 멋있어서 고려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목이 뻐근해서 고개를 위로 들때마다

고려대학교 로고를 보고 다시 심기일전할 수 있도록

천장에다가 수특 같은 책 뒤에 있는 고려대학교 로고를 찢어 붙이는 중이었다.

 

"미쳐야 미친다"

 

라고 전한길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분명 나는 미쳐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부에 진심이었던 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 나머지,

'수면 공부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싸이비 같은 공부법을 터득해내고 만다.

 

 

 

[다음 이야기 예고]

"자면서도 공부하는 방법"

 

 

 

Fun Facts

1. 지금 고려대는 그냥 귀여운 고양이로 보인다.

2. 삼반수생 아저씨는 동생들한테 무시 당하면서 쌓인 울분을 나한테 풀었다.

3. 그 사나이는 결국 학원에서 쫒겨나고, 같은 해 롤 다이아를 찍고 원래 학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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