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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수능, 재수, 그리고 인생 (1편)

by Mr.dodo 2023. 11. 15.

나는 흔히 말하는 수포자였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수능을 포기한 사람.

 

사실 정규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

대안학교 출신이라

포기를 했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면 뭘 시작을 했어야 포기를 하지

 

 

내가 사탐 과목이 뭐가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되었던 것은

고3 6월에 처음으로 쳤던 모의고사 덕분이었다.

 

인생에서 수능과 관련된 무언가를 처음으로 만진 진귀한 시간이었다.

 

 

"너 근데 연세대잖아"

 

 

아니라고 한 적 없다.

나는 분명 올해 2월에 연세대학교 (본캠)를 졸업했다.

 

그럼 과연 이 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버지가 법무부 장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 날 이후,

5개월 동안 나는 죽도록 공부해서 연세대학교를 입학할 수 있

었을리가

 

남은 5개월 동안 나는 학교에서는 눈 먼 사랑을, 집에 와서는 게임이나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포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인

포항 제철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러 갔고

 

놀랍게도 결과는

 

국어 4등급
수학 5등급
영어 3등급
생활과윤리 6등급
사회문화 7등급

 

엄마도 대학교수가 아니라서 위조는 못한다

 

 

내가 당시 놀랐던 것은 수학을 전부 찍고 잤는데도 무려 5등급이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다 찍어도 5등급이 나왔으니까, 만약 몇 문제 풀고 찍으면 4등급이 나왔을까?

얘는 지금 국어 4등급 맞아놓고 글을 쓰겠다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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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스토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시리즈

'대망의 재수편'으로,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쯤 나와야 한다. 

 

강박증처럼 목차를 수정하면서 연재를 이어가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새치기를 한 이유는 바로 내일이 수능이고,

 

2014년도의 나처럼 신분을 잃고 갈 곳이 없어졌다고 느낄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내가 그렇게 서럽게 선생님 품에 안겨서 울었던 이유는
사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도, 정든 학교를 너무 떠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전문대까지 떨어져버린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이제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재수학원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Ps.

내일 여러분의 우울한 표정을 보고는

차마 잘쳤는지 묻지도 못하시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혼자 어두운 곳에 가서, 예전의 나처럼 울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이

우연치 않은 계기로 이 글을 본다면 얼마든지 대화를 걸어도 좋다.

 

 

나는 아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경험과 통찰력을 겸비한 사람이 되어, 잠깐 인생의 괴로운 시기를 겪는 누군가에게

F처럼 위안이 되는 말을 건네고, T처럼 용기를 주는 사람.

 

 

 

 

 

[다음 이야기 예고]

"내가 학원강사 30년 하면서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Fun Facts

1. 나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까지 했지만, 사실 원래는 고려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미안하다.

2. 놀랍게도 이 글은 재수 장려글도, 재수학원 홍보글도 아니다.

3.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은 나를 마지막 SKY로 배출하고 부진한 성적에 허덕이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4. 나는 모교에서 처음으로 연세대를 뚫은 사람이라, 후배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내 덕분에 합격한 줄 안다.

5. 근데 아마 그건 아닐거다. 난 학교에 와서 시위하고 총장실 쳐들어가고 했는걸..